제 9권의 말미에 보면 효수당하기 직전 천봉삼이를 바꿔치기하는 매월의 놀라운 작전이 펼쳐진다. 그 후 봉삼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제 10권을 펼쳐보면 처음 나온 인물인 행수 정한조가 이끄는 소금상단 이야기 뿐이다. 봉삼이는 무사히 탈출했는지, 그로부터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작가는 실마리 조차 보여주지 않으나, 정한조가 맞이한 세상 또한 봉삼이가 살던 시절보다 더 타락했으면 타락했지 어느 것 하나 좋아진 것이 없으니 봉삼의 희생은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갑갑할 뿐이다.
울진에서 소금을 받아 내성으로 옮겨 이문을 취하는 소금상단이 산적의 공격을 받아 두 명이 목숨을 잃자 이참에 산적의 소굴을 쳐서 후환을 없애려 하는데, 산길에서 절벽으로 떨어져 거의 죽게 된 이를 구해 병구완하여 살려내자 그는 자신이 천봉삼이라고 말한다. 봉삼이 맞이한 운명이 어째 이토록 가혹한건지 가슴이 아려오지만, 아무 연분이 없어도 길에서 환자를 만나면 구완하고, 장례를 치뤄주는 보부상들의 상부상조하는 모습은 선한 사마리아인을 보는 듯 장하기만 하다. 그러나 몸이 회복되자 인사도 없이 도망가는 배은망덕한 처사가 어째 봉삼과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더니 역시 그는 산적의 끄나풀이었고, 다시 잡은 그를 족쳐 산적의 본거지로 몰아갔더니 소굴의 입구를 지키는 암자에서 파수를 보며 가짜중 노릇하는 이가 봉삼이라니 왜 이렇게 맥이 빠지는지... 천하의 천봉삼이 처자가 인질로 잡혀있다 해도 적당의 정보원 노릇으로 연명할 리가 없고, 만약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천봉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쨋거나 산적 괴수가 숨겨놓은 장물로 산채에 있던 이들에게 땅을 사주고 마을을 이루어 봉삼이가 그곳에서 객주노릇을 하게 되었다는 갑작스러운 마무리는 영 거북살스럽다. 송파, 평강, 원산의 마방은 모두 봉삼이가 피땀흘려 일구어낸 것이지만 생달마을을 이루고 객주가 된 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도적의 장물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가. 왕년의 봉삼은 상인들의 꿈인, 인삼을 독점거래할 수 있는 황첩을 손에 넣었지만, 귀한 것을거저 얻을 수 없다며 불태워버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고생한 봉삼이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 받아들이려해도찜찜하고 억지스러운 결말이다. 봉삼이도 10권의 후반부에 겨우등장하는 형편이니 매월이, 이용익, 천소례, 조성준, 조소사가 낳은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자 하는 것은 독자의 과욕일 뿐이다.월이가 달덩이같은 아들을 낳았더라는 후일담도 옛이야기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
그 재미와 감동 고스란히 30여 년 만에 완간되는 김주영 장편소설 객주
김주영 작가의 대표작이자 한국 역사사회소설의 한 획을 그으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장편대하소설 객주 가 마지막 10권을 내놓으면서 마침내 완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10권은 1, 2, 3권 제1부 외장(外場)과 4, 5, 6권 제2부 경상(京商)에 이어, 7, 8, 9권 제3부 상도(商盜)에 속하며 그 끝을 맺고 있다.
1878년부터 1885년까지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조선후기의 시대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낸 소설 객주 는 정의감, 의협심이 강한 보부상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한 보부상들의 유랑을 따라가며, 경상도 일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근대 상업자본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있다. 피지배자인 백성의 입장에서 근대 역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대하소설의 새로운 전기를 만든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5년간의 사료 수집, 3년에 걸친 장터 순례, 2백여 명의 취재로 완성된 한국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객주 의 완간은 오랫동안 기다린 시간만큼 독자들에게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며, 이 작품을 처음 만나는 젊은 독자들에게는 재미와 의미가 모두 충족되는 잘 짜인 역사사회소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작가가 새로운 보부상의 길이 발견되면서 10권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했거니와 객주 10권은 앞서 출간된 9권까지의 이야기와는 또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길이 달라졌으니, 그 길에 담긴 또다른 이야기가 있을 터. 지난 이야기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의 매력으로 채워질 것이다.
제3부 상도(商盜)
멀고먼 십이령
화적(火賊)
정착촌(定着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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